생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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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제주희귀식물 갈매기난초
2008-12-18 15:14:06 - 작성자곶자왈 () 조회수5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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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갈매기 닮은 꽃무리가 오밀조밀
[김봉찬의 제주희귀식물] 43- 갈매기난초
서귀포신문 webmaster@seogwipo.co.kr
▲ 난·온대림 자생식물인 갈매기난초.
갈매기난초라는 것이 있다. 꽃의 모양이 갈매기를 닮았다고 해서 갈매기난초라 불리는 이 식물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가까운 일본 등의 난·온대림에 자생하는 식물로 제주의 대표적인 야생난 중 하나다.
갈매기난초(Platanthera japonica (Thunb.) Lindl.)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다 자라면 키가 어른의 무릎 정도 된다. 제주의 곶자왈지대와 낙엽활엽수림 가장자리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서식한다. 잎은 둥글고 넓은 타원형으로 5~8장이 어긋나게 달리고 꽃은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꽃대가 나와 하얀 꽃이 줄기 가득 피어난다.
갈매기난초의 꽃은 다소 두툼한 육질로 길게 뻗은 거와 선형의 순판 등이 이루는 구조가 작은 새를 연상시킨다. 얼마 전 소개한 바 있는 나도제비란의 경우 순판이 넓고 그 색과 무늬가 화려해 눈에 띄었던 것에 반해 갈매기난초는 무늬나 별다른 특색이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제비란의 꽃이 두어 송이 정도 피는 것에 반해 갈매기난초는 많은 꽃이 모여피어 전체적인 꽃차례가 화려하고 눈에 띈다. 나도제비란은 꽃의 수가 적은만큼 하나하나의 꽃이 크고 화려한 반면 갈매기난초는 각각의 꽃은 작고 수수하지만 여럿이 모여 피어 화사한 꽃무리를 만드는 것이다.
갈매기난초의 또 다른 특징은 넓은 잎이다. 제주에 분포하는 야생난 중 갈매기난초는 비교적 잎이 넓고 큰 편에 속한다. 그리고 마치 다육식물처럼 잎의 질감이 부드럽고 도톰한데 이러한 형태적 특징은 갈매기난초의 자생지환경과 연관 지어볼 수 있다.
첫째, 잎이 넓은 것은 그만큼 초식동물의 피해가 적다는 뜻이 된다. 갈매기난초는 난·온대림에 서식하지만 깊은 숲 내부가 아닌 숲 가장자리 볕이 잘 드는 풀밭 등지에 서식한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트여있는 초원지대가 아닌 초지가 끝나는 관목림과 숲 가장자리에 분포한다. 이 경우 잡목과 가시덤불 등의 관목림은 초식동물을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고 갈매기난초는 마음 놓고 잎을 키워 광합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잎이 넓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새우난초에 비해 색이 옅은 편이다. 새우난초 역시 숲 속에 자생하는 야생난으로 넓은 잎을 지녔지만 갈매기난초와 비교하면 잎이 단단하고 매우 짙은 녹색을 띈다. 잎의 색이 짙다는 것은 엽록소의 밀도가 높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상록성 식물과 상록수림의 초본의 경우 잎의 색이 매우 짙다. 새우난초와 갈매기난초가 모두 난·온대림에 분포하는 야생난이지만 새우난초는 좀 더 깊은 숲, 특히 난대림의 상록활엽수림지대에 가깝고 갈매기난초는 온대림에 낙엽활엽수림지대 중에서도 숲 가장자리에 근접한 분포영역을 지녔다.
셋째, 잎의 질감이 부드럽고 육질인 것은 수분함량이 많음을 뜻한다. 그만큼 자생지 환경이 볕이 잘 드는 건조한 곳임을 의미하는 데, 여러 번 언급했듯이 갈매기난초는 숲 가장자리 볕이 잘 드는 건조한 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간다.
이와 같이 식물의 형태적 특징은 다양한 정보를 지닌다. 식물의 기원과 서식지 환경, 진화의 역사 등이 기능과 맞물려 형태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식물의 형태를 관찰하면서 그 식물이 살아온 수많은 시간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인가. 꽃을 보면서 갈매기를 떠올리는 인문적 상상력과 더불어 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유추해보는 과학적 상상력을 함께 발휘해보기를 권한다.
2008년 11월 01일